[차홍규칼럼]12. 변화하는 조선족 자치주 연변

지금 우리 조선족 자치주(延邊 朝鮮族 自治州)인 연변은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최근에 다녀온 연변은 중국의 경제발전에 힘입어 새로운 물결에 호응하며 기대에 부풀어 있다. 연변은 인구가 총 230만 명 정도로 중국에서는 아주 작은 지역이다. 주도(州都)는 옌지시[延吉市]로 조선 말기부터 우리 한국인이 이주하여 개척한 곳으로 이전에는 북간도라고 불렀다. 1952년 9월 3일에 자치구가 설립되고, 1955년 12월에 자치주로 변경되었다. 옌지[延吉], 투먼[圖們], 둔화[敦化], 허룽[和龍], 룽징[龍井], 훈춘[琿春]의 6개시와 왕칭[汪淸], 안투[安圖] 2개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구 구성은 조선족이 41%를 차지하며, 나머지는 한족(漢族)·만주족(滿州族)·후이족[回族]의 순이다.

 

올해 중국의 명절인 구어칭지에(國慶節)는 10월 1일로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 기념일이다. 중국공산당이 국민당 세력을 타이완으로 패퇴시키고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었음을 선포한 날로 중국은 휴무에 들어간다. 작년 10월 1일부터 7일까지 연변을 찾은 중국인은 20만으로 같은 기간 우리나라를 찾은 중국의 요우커들과 비슷하다. 이는 대단한 숫자로 우리나라는 요우커가 많이 왔다고 대대적으로 환영하였지만 겨우 일개 자치주를 찾은 정도의 인원이다. 특히 돈 많은 중국의 남방 사람들이 주로 연변을 찾았는데 이들이 먹고 마시고 쇼핑한 금액만도 엄청나다. 즉, 다시 말하자면 우리나라를 찾는 요우커 인구와 같은 인원이 연변으로 몰리니 그들의 소비로 연변은 많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연변자치주는 원래 공업도시를 추구하였으나 이러한 관광수요에 힘입어 2016년부터 새로 시작하는 중국 제 13차 5개년 계획에서 ‘공업지역’을 추구하려하였으나 ‘공업지역’대신 이제는 ‘다국경 국제 관광지역’으로 변경하여 대대적인 발전을 도모하려하고 있다.

 

우리에게 연변사람하면 나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중국이 못 살던 시절 우리 한국인들이 말이 통하니 연변으로 많이 들어갔고, 돈이 있으니 우리 조선족 동포분들이 주위에 몰려들면서 알게 모르게 많은 불협화음이 생긴 것도 사실이고, 실제로 필자도 나쁜 연변사람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은 경험도 있으나, 이제는 대국적인 안목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여정에서 만난 천우그룹(연변 공공건축의 60%를 점유하며, 그 외 무역, 유통 등과 북한에 광산 채굴권을 소유)의 리용석(조선족)회장은 필자에게 우리 한국인과 조선족이 힘을 합쳐서 거국적인 협력을 하자고 제안한다. 그 내용인즉 우리 동대문이나 남대문 같은 대규모 의류 및 기타 한국 상품 쇼핑센터를 연변자치주 수도 연길에 설치하여 몰려오는 중국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국인과 조선족의 공동 번영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제안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연길시내의 장소까지 물색 되었으나 저 같은 예술인 보다야 서울시장이나 중구나 동대문구의 구청장 또는 기업인들이 앞장서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 한국에 조선족 분들이 많이 와서 주로 3D 업종에 근무를 많이 하는데, 실상을 알고 보면 일하는 대부분의 조선족 분들은 우리의 생각과 달리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들도 많다. 즉, 한국에서 악착 같이 번 큰돈으로 중국의 생활에 크나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이 분들은 한국이 그립기도 하여 한국에 오지만, 와서는 특별하게 할 일도 없으니 한편으론 돈도 벌고 한편으론 유흥도 즐기다가 중국으로 돌아가서는 몇 개월씩 유유자적하게 쉬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그분들이 자국 연변으로 귀국하여 시청하는 TV는 당연히 한국방송이고 옷이나 일용품 심지어 문구점에 가도 온통 한국 상품으로 진열되어 있고, 또한 애용하고 있다. 즉, 그들은 한국 마니아로 중국의 일선에서 우리 한국을 홍보하여 주는 일등 공신들이다.

 

이번에 연변을 가서 놀라운 것이 서시로 유명한 우리의 시인 윤동주 – 만주 북간도의 명동촌(明東村)에서 태어났으며 평양의 숭실(崇實)중학교를 다니다 신사참배 문제가 발생하여 학교가 폐쇄 당하자 용정에 있는 광명(光明)학원의 중학부를 졸업하였고, 서울의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 문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를 다니다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복역 중 사망한 시인으로 중국 정부와 연변자치주에서는 항일운동의 대표적인 조선족 인물로 묘사하여 생가에 커다란 석재를 이용하여 서시의 시비를 세웠고, 모교인 용정의 대성중학교에도 그의 동상과 시비를 세워 관광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격변하는 시대에 놀라운 발전을 하고 있는 중국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 그 중에서도 우리 동포들이 밀집하여 살고 있는 연변자치주 수도 연길의 조선족들. 그들은 우리와 조상이 같은 한민족으로 우리 동포들이다. 우리와 그들이 손잡고 보다 나은 미래를 창조하는 길은 그리 멀지 않다는 생각을 하여본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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