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홍규칼럼] 8. 차홍규가 만난사람-남문기 해외한민족대표자협의회 의장

조각가에게 조찬모임이라면 상당히 거리가 멀다. 무슨 뉴스에서나 들어본 이야기인데 어느 날 전혀 모르는 분이 필자에게 조찬모임의 초대를 ? 초대자가 남문기 해외한민족대표자협의회 의장이란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세계 한인대회의장, 미주한인회총연합회 회장, 미주한인상공인 총연합회 회장, 로스엔젤레스 직선한인회장등 굵직한 회장직을 비롯하여 ‘뉴스타그룹’ 명예회장, 건국대학교 명예정치학박사 등 경력도 화려하고, 꿈과 열정, 희망을 심어주는 ‘남문기 성공학 강연’을 국내외에서 500여회 이상을 하였단다. 그 뿐 아니라 미주 내 ‘뉴스타 장학재단’을 설립하여 15년 동안 약 1,000여명 이상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하고, 개인적으로는 미국의 대통령상을 비롯하여 많은 상을 수상하였고, 미국에 한국인 대통령을 당선시키기 위하여 1,000만명을 미국에 이주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큰 포부도 가지고 있었다. 13페이지를 가득 메운 이력서 중에 가장 재미있는 문장은 돈 받고 한 단체장이 없다는 것이다.

남 의장의 첫인상은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에 다부진 체격의 소유자로 대화를 하다 보니 유머 감각이 매우 뛰어났다.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고 꾸밈없는 솔직함 대화를 이어나가다보니 인터뷰는 화기애애한 가운데 기분 좋게 진행되었다.

 

Q1. 열심히 사셨습니다. 달랑 300달러를 가지고 도미하여 청소부로 시작하여 수많은 직원들과 함께 이제는 스스로가 설립한 회사 ‘뉴스타’를 미주지역 곳곳에 지사를 설립할 정도로 성장하셨고, 남문기하면 전 세계 한인들이 다 알 정도로 유명합니다. 성공 뒤에는 어려움도 많으셨을 텐데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부탁드립니다.

경북 의성의 아주 첩첩산중 촌에서 성장하여 읍에서 중학교를, 고등학교는 인천에서, 대학은 서울의 건대 법대를 진학하였고, 해병대 전역 후에 졸업을 했습니다. 27살에 한국주택은행에 입사하여 2년간 일하다가 좀 더 넓은 세계로 진출하고자 그 좋은 직장 팽개치고 유학을 준비하여 82년 1월 도미하였습니다.

그 때는 모두가 다 어려운 시절이었기에 충분한 돈이 없었을 뿐더러 돈이 있다하여도 일정액 이상은 가지고 갈 수도 없었습니다. 미국에 도착 후 다들 그러하듯 먹고 살기 위해서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고 돈벌이가 되는 일이라면 주저 없이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청소하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 회사에서도 남들보다 더 늦게 자고 더 일찍 일어나며 최선을 다해서 노력한 결과 8,000불 매상을 가진 회사를 30만불 매상으로 성장시켜서 능력을 인정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역시 하는 일이 청소였기에 좀 더 큰 목표를 가지고 저만의 새로운 활로를 찾다 부동산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한국에서부터 몸에 베인 근면, 성실함과 해병대에서 배운 도전과 개척 정신은 경쟁자들에 앞서 저를 지금까지 성장시켜준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저는 뉴스타그룹 설립이래로 27년을 성장해오는 동안 직원들과 에이젼트들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여줍니다. “부동산업을 하는 우리의 경쟁자들은 생각보다 많이 게으르다. 그들과 같이 게을러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잠을 줄이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며 고객에게 감동을 심어 주어야 한다. 무엇을 지시하든 그 사람의 마음에 들게 하라! 이것이 성공의 열쇠이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정직, 성실, 근면으로 회사를 운영하였기 때문에 활황 때는 수조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회사운영이라는 것이 항상 좋은 것이 아니듯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어 한때는 어려움도 있었으나 다시금 부동산 시장이 활황을 맞이하여 재도약을 하고 있습니다.

 

Q2. 우리 ‘국민 1.000만명이 해외로 나가야 우리가 산다.’라는 명쾌한 논리를 제시하였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지요?

미국은 살아 보면 참 좋은 나리이고 살기를 권유해도 욕먹지 않을 정도로 미래가 있고 맑고 밝은 나라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아니지만 30년 혹은 50년 후를 내다 봤을 때 우리 한국인이 미국에 1,000만명 이상이 거주한다면 미국에 한국인 대통령을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한국인이 일본이나 중국에 가서는 그 나라의 대통령이나 총리를 할 수 없지요? 왜냐하면 주인인 일본인이나 중국인이 있기 때문이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은 임자가 없는 나라이고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나라기 때문에 흑인도 대통령에 당선된 나라입니다. 우리라고 못할 것이 없습니다. 가능하다는 것은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Q3. 의장님께서는 지금이야말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 강조하십니다.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영국의 철학자 앨런 와츠는 “원을 그려놓고 사람들에게 물으면 대부분 원이라고 대답합니다. 벽에 뚫린 구멍이라 답하지 않는다. 바깥보다 안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직 시 중앙버스 전용차선제를 처음 만들어 시행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중앙버스 전용차선제는 도로 중앙에 버스전용차선을 만들어 버스가 빨리 갈 수 있도록 만든 것으로, 서울과 같이 교통량이 많은 곳에서는 매우 큰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전용차선제는 청계천 복원과 함께 이명박 서울시장을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일조하였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교육 받고 행동해 온 획일화된 생각은 우리들을 고정된 사고의 감옥에 갇히게 만듭니다. 이런 사고방식으로는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습니다. 달리보고, 달리생각하고, 또 다른 무엇을 찾아내 현실에 적용하는 창조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은 오랜 세월을 두고 일어나지만 그 것을 빠른 시일에 주도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선구자가 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의 틀, 고정된 생각에만 가두어 그 속에서 감히 헤어 나올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하고 되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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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저는 조각가입니다. 우리 예술인들에게도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저는 LA 한인타운에서 “뉴스타 문화공간”이라는 장소를 만들어 한인들에게 문화 공간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는 문화의 궁핍으로 숨 막히는 우리 한인들을 위하여 문화의 향기를 맡으며, 아름다운 예술 문화를 직접 경험하도록 하자고 한 저의 의지입니다. 독도 그림으로 유명한 권용섭화백이 13년간을 운영하고 있지요 .‘예로부터 예술가는 배가 고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봤을 때 몇몇 유명한 예술가들을 제외하고는 현대에도 이 말은 똑같이 적용되는 말인 것 같습니다. 다들 사는 게 쉽지 않지만 예술가들의 삶은 더욱 고달픈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 예술가와 예술을 바라보는 일반인의 시각에는 많은 차이가 납니다.

즉, 예술가는 스스로 깊이 생각하고 작품을 만들어 그 속에 나름의 의미를 담고 대중에게 내놓으면 예술품이 된다는 생각을 하지만, 일반인들은 어디가 감상 포인트인지 알기 어려운 작품을 보면서 예술은 역시 즐기기 어렵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양극화 현상으로 예술품은 점점 더 대중들로부터 외면 받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지인들에게서 전시회에 갔다가 돈만 버렸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저는 예술계가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을 탈피하여 좀 더 대중적인 코드에 초점을 맞췄으면 합니다. 나만의 작품세계를 탈피해서 누가 봐도 잘 그렸다, 잘 조각했다, 즉, 일반인들이 보더라도 이해가되고 납득이 되는 수준의 작품이 완성된다면 분명 더 많은 관객이 찾을 것이고 예술 소비로 이어질 것입니다. 발상의 전환은 예술계에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Q5. 그럼 문화의 대중화에 대하여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가 드린 답변의 연장선에서 말씀드리자면, 결국 소비자의 욕구에 맞추는 것이 대중화입니다. 작가가 생각한 구상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예술로 보여주겠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 대중화의 시작이 아닐까 합니다. 예로, 자그마한 식당이나 슈퍼마켓 점포하나 오픈하는데도 시장 조사를 하고, 상권 분석을 하며, 주요 소비자의 동향분석 등 많은 사전 조사가 필요하지요. 예술계도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미술이든 음악이든 예술의 대중화측면에서 먼저 소비자인 고객을 우선 생각하였으면 합니다.

 

Q6. 끝으로 성공한 사업가이신데 한 말씀 더 부탁드리면?

우리 시대에는 누구나 마찬가지였지만 어려서 정말 가난하게 성장하였고, 29살에 미국에 생활을 시작할 때도 역시 아주 어렵게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성공한 기업인으로 회자됩니다. 저처럼 어렵게 출발한 사람이 부자로 태어난 사람보다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을 합니다. 가진 게 없으니 잃을 것도 없잖아요? 사실 가난하게 태어난 건 부끄럽지 않지만 가난하게 죽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지요.

세계적으로 성공한 동서양의 유명인을 보십시오. 중국 알리바바의 마윈을 보면 아주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고, 좋은 대학도 안 나왔고, 더욱 머리도 좋지 않아 수학시험에서 단 1점만 받은 일화도 유명하지만, 미래는 인터넷 시대가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올인 한 결과 세계적 부호로 성장하였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양부모 밑에서 자라며 마약을 하고 히피문화에 젖는 등 어린 시절 어려운 환경에 있었으나, 모두 극복하고 대기업을 세웠습니다. 손정의는 일본 남단 규슈의 조선인들이 모여 사는 무허가 판자촌지역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조센진’이라며 차별과 멸시 속에서도 꾸준히 실력을 길러 일본의 유수한 기업인이 되었습니다. 이렇듯 세계적으로 유명한 3사람의 환경은 불우하였습니다. 여러분들도 발상 전환을 하고, 열심히 일하시고, 하는 일을 좋아하며 그 일에 미친다면 분명히 위 세 사람처럼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생각보다 같이 살아가는 경쟁자들이 게으르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남문기 의장과의 대화는 막힘이 없고 글자 그대로 시원시원하였다. 웃는 모습도 참으로 순박하였다. 교묘한 논리나 어려운 제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쉽고도 명쾌하게 질문에 답해주었다. 그래서 강의를 하면 수강자들이 그렇게 좋아 한다고 한다. 기립박수는 그냥 나온단다. 인터뷰를 하면서 예술에 대한 생각은 남의장이 사업가이기에 필자와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 하였지만, 그 외에 삶의 진리, 또한 인생의 성공이라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길이 아니라 바로 근면과 성실, 발상의 전환이라는 단순한 것임을 깨닫게 하여 준 뜻 깊은 인터뷰 시간이었다.

 

다운로드 (1)차홍규

  • 북경 칭화대학교 미술대학 정년퇴임
  • 광저우 화난리공대 고문교수
  • 화성폴리텍대학 명예교수
  • 북경 SUN ART 갤러리 전속작가
  • 북경 조어대, 중국항공, 하이얼 등 작품소장
  • 국제 비엔날레, 아트페어 등 단체전 200여회 개인전 2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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