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나라 터키

여름휴가를 맞아 터키에 다녀왔다. 카파도키아, 안탈리아, 페티예, 파묵칼레, 이스탄불의 5곳을 방문하고 왔다. 여행을 떠나기가 무섭게 터키리라화가 폭락하는 바람에 현지 여행을 보고 즐기는데 여유가 좀더 생겼다는 행운도 따랐다. 이번 여행은 역사, 지리, 문화적으로 터키라는 나라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를 하게 되어 의미가 있었다. 여느 휴양지와는 다른 감정과 생각들을 남겨주는 터키다.

 

카파도키아

지구상의 200여개국 중 터키를 이번 여행지로 선택한 이유는 카파도키아에서 풍선을 타고 싶다는 깃털같이 가벼운 마음 때문이었다. 그래서 카파도키아가 위치한 터키의 중원으로 갔다. 내가 카파도키아에 도착했을 때는 3일간 연속으로 풍선운행이 취소된 다음날이었다. 카파도키아 관광명물인 벌룬투어는 20~30명 정도 열기구를 타고 비행을 하는 상품으로 안전이 제일 중요시 된다. 만약 풍선낙하사고로 인해 단 한명의 인명피해라도 있다면 카파도키아 벌룬투어의 명성은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따라서 풍속과 풍량 안개유무 우천여부 등 당일 새벽 5시~6시 전후 일기를 확인한 이후 안전성이 판명되면 정부가 OK사인을 내린다. 업자와 관광객들은 그제서야 긴장된 마음을 풀고 벌룬투어를 시작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지상에서 바람한점 없이 맑고 맑은 평상시에도 열기구 운행은 급 캔슬될 수 있다. 이것이 터키여행의 가장 확실한 촉매제였던 만큼 제발 우리에게만은 캔슬의 시련이 없기를 바랐다. 그리고 다행으로 나는 당일 그리고 그리던 벌룬투어를 체험할 수 있었다.

 

풍선위 혹은 떠오르는 풍선을 촬영할 수 있는 지대에서 내려다 보는 카파도키아의 일반적인 지형은 영화 스타워즈와 같은 SF의 배경이 될법한 기암들이 펼쳐진다. 빌딩숲, 정갈한 사각도로, 사각진 사무실, 네모난노트북, 직사각형 책과 노트 등 사각형에 둘러싸여 있었던 나에게 카파도키아는 알록달록한 색감과 자연의 곡선으로 멍하게 순수한기쁨을 주었다.

아름다운 말들의 땅이라는 뜻의 카파도키아는 역사적으로는 과거 히타이트부터 시작해 페르시아, 고대 로마 제국, 동로마 제국의 흥망성쇠를 거듭하여도 꾸준히 사람이 살아왔고, 실크로드가 통과하는 지점 중 하나로서 대상들이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기도 했다. 지리적으로는 화산활동의 결과 분출된 마그마와 화산분진으로 형성되었고 오랜세월을 거치면서 침식활동에 의해 이러한 지형이 형성되었다. 역사적으로 피지배민들이 기암에 동굴을 파고 들어가 사는 은신처의 역할을 하다 현재는 이러한 지형을 체험해 보는 동굴호텔숙박이 특징적인 관광상품이 되기도 한다.

 

안탈리아

카파도키아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가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으므로 북동쪽의 이스탄불로 비행기를 탄후 다시 남쪽에 위치한 안탈리아로 국내노선 2개를 이용하여 비행기를 타고 이동했다. 터키의 중원과는 달리 남동쪽은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지중에 연안해 위치해 있어 우리가 익히 상상하는 이탈리아 남부와 그리스와 같은 공간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1박을 하고 콤팩트한 일정으로 반나절 정도 돌아볼 시간이 있었다. 안탈리아 구시가지를 메인으로 둘러보았는데, 구시가지란 예전 로마시대 성벽안의 시가지를 의미한다. 수백, 수천년의 시간을 통과하는 동안 멋스럽게 보존된 취향저격의 거리를 맛볼 수 있다. 이곳에서 나는 냉장고에서 꺼낸 중간크기의 코코넛에 빨대를 꽂아마시고 코코넛을 사랑하게 되었다. 몸에 좋은 열대과일, 넛츠, 올리브유를 파는 가게와 석류, 오렌지 등 과일주스를 갈아 파는 매대가 카파도키아 만큼 많았다. 바다에 인접해 있어 푸른색과 녹색, 그리고 구시가지의 건축물의 색인 반들반들한 베이지색 등이 도시를 채색하고 있었으며 낮은 건물들이 대부분이어서 대도시의 답답함으로부터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페티예

안탈리아에서 서쪽으로 4시간 정도 이동하면 역시 지중해와 맞닿아 있는 액티비티의 천국 페티예를 만날 수 있다. 폐티예에서는 평소 해보고 싶었던 패러글라이딩, 보트투어 등을 하며 지중해 바다를 실컷 즐겼다. 국내나 스위스와 같은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서도 페러글라이딩을 많이 하는데 페티예의 매력은 지형과 적당한 바람, 그리고 주변경관에 있다. 게다가 스위스 등 다른 국가에 비해 가성비가 좋다. 페티예에는 잘 훈련된 터키출신 페러글라이더들이 많이 있어 패러글라이딩을 이용하면 산 꼭대기로 올라가 페러글라이더의 간단한 설명을 듣고 글라이더가 조작한 장비를 내 몸에 채워주면 바로 비행이 시작된다. ‘GO’ 사인과 함께 약 5~10발자국정도 힘껏 뛰면 바로 공중으로 점핑할 수 있다. 바람도 적당하고 발아래 바다와 산이 동시에 보여서 약 20여분간 공중에서 날아다니는 느낌이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사진을 잘찍는 페러글라이더와 짝이 되었다. 고프로로 400장정도의 사진과 360도 카메라로 찍은 10여장의 사진을 200리라에 살 수 있었다. 환율이 200원이하였을 때라 매우 저렴한 가격에 비행사진도 get할수 있었다. 타기전에는 혹시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나 않을까 몹쓸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한살이라도 젊을 때 다 즐겨봐야 한다는 생각에 눈꼭감고 그냥 해버렸다. 막상 해보니 정말 즐겁더라! 하늘을 나는 경험, 고소공포증만 없다면 최고다!

패러글라이딩은 어느정도 상상을 했지만 상상외의 큰 즐거움을 준 것은 관광보트투어였다. 캐리비안의 해적에 나올법한 크기의 범선 모양을 한 보트에 약 150~200명 정도의 인원이 탄다. 그리고 지중해 바다 해안 약 5곳에 차례로 정박한 후1시간 정도 놀 시간을 준다. 탑승객들은 수영도 하고 먹을 것도 주고 댄스파티와 다이빙 쇼와 같은 이벤트를 즐길 수도 있다. 내가 탄 배에는 한국사람이 5명 뿐인 배였다. 중국인들도 약 25명 정도 보였는데, 나머지는 유럽이나 터키인들이었다. 터키 젊은이들이 거침없이 바다로 뛰어들고 물속에서 탄성을 지르고 또 춤을 추고 노는 모습에 반해버렸다. 어쩜 그렇게 어른애처럼 순수하게 즐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나도 그들과 동화되어 신나게 놀았던 것 같다.

파묵칼레

페티예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파묵칼레였다. 파묵칼레의 물이 마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전에 꼭 가볼 곳으로 꼽고 있었다. 페티예에서 북쪽으로 약 4시간 정도 고속버스를 타고 가면 파묵칼레라는 석회봉 마을이 나온다. 파묵칼레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 정도였는데 체크인하고 점심을 먹고 한잠을 잔후 뜨거운 햇볕이 좀 가시기를 기다렸다가 오후 4시쯤 파묵칼레로 입장했다. 이때 입장하면 작렬하는 태양을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약 8시 즈음 지는 해를 보며 내려올 수 있기 때문에 딱 적당한 시간대이다. 터키어로 파묵이 목화를 뜻하고 칼레는 성을 뜻하므로 파묵칼레란 목화 성이란 뜻이다. 물속에는 석회 성분이 들어있어 피부에 좋다. 그래서 파묵칼레에 가면 수영복을 입고 와서 온천처럼 입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페티예에서 원없이 물놀이를 했으므로, 이곳은 그냥 패스하기로 하고 발과 손 정도만 담궜다. 파묵칼레가 특징적인 것은 신발을 벗고 입장하는데, 적당히 딱딱한 석회봉 위를 3시간 동안 걸어다닐 수 있다는 것이다. 진귀한 체험이었고, 적당히 쌓인 피로를 풀어주는 맛사지 역할도 해 주었으며, 무엇보다 그 일대가 참 아름다웠다. 어떤 구역은 석회봉이 말라 있었고 또 어떤 구역은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으며, 어떤 곳은 웅덩이 처럼 물이 고여 있었다. 물이 마른 이유는 지구온난화때문이라고 한다.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내려왔다.

 

파묵칼레 정상까지 올라가면 다시 신발을 신고 평지로 걸어갈 수 있게 되어 있다. 그 위로 시중의 10배 가격으로 파는 물과 음료수를 사먹을 수 있다. 목이 너무 말라 오아시스처럼 고마우면서도 도둑처럼 비싼 값에 팔고 있어 순간 분노했다가 이해하기로 했다(생각해 보니 내가 어렸을적 아빠와 함께 남한산성에 오르곤 했는데, 정상에서 파는 맛있는 튀김우동은 2500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중의 5배 정도 했던것 같다). 얼마간 그늘을 즐긴 이후 조금더 북쪽으로 올라가 보면 고대도시의 흔적들을 보존하고 있는 곳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힘들었지만 또 이런 역사적인 현장에 올 기회가 언제 있을까싶어 꾸역꾸역 올라가 보았다. 고대도시의 원형극장의 일부 터전을 볼 수 있었는데, 그곳에 앉아보니 마치 나라는 존재는 수천년 과거와 연결되어 있는 기분이 들어 뭉클했다. 이스탄불 투어에서 기대했던 역사의 현장을 파묵칼레에서 느낄 수 있을줄이야… 뜻밖의 수확을 얻고 터키라는 나라의 세계사적 의미와 매력에 대해 좀더 호기심이 생겼던 것 같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곳은 히에라 폴리스라는 지금으로부터 2200년전에 존재했던 도시의 잔해였다.


히에라폴리스(그리스어: Ἱεράπολις)는 기원전 190년에 시작된 도시의 유적이다. 원형극장으로 1만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이다. 둥근 관객석 위에서 내려다보는 파묵칼레의 전망이 황홀할 정도로 멋지다. 이 밖에 터키식 증기 목욕탕이나 돌을 쌓아만든 벽 등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으며 이곳에서 발굴된 출토품들은 히에라폴리스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위키백과).


이스탄불

파묵칼레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이스탄불로 이동했다. 우리의 터키여행의 종지부이자 가장 많은 감정의 소재를 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이스탄불이다. 터키여행전 읽었던 터키가 나은 천재작가 오르한 파묵의 <이스탄불>이 이스탄불을 보는 프리즘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터키의 각 지방을 돌았다면 이번엔 터키의 도심 깊숙이 들어갔더니, 그동안 터키의 얼굴과는 다른 얼굴을 한 터키가 보이고, 이에 다른 감정들을 느끼게 된다. 이스탄불의 거리는 시민이 청결하게 관리해야지라는 의욕이 없어보이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거리는 쓰레기와 찌든 때같은 거무잡잡함이 그대로 묻어나 있었다. 갑자기 사람들은 많아졌고, 혼잡한 길목에서 여러번 방향을 잃고는 했다. 게다가 주변에 호객상들이 많아서 머뭇머뭇 거리다가는 낚이기 딱 좋다. 이도시에는 대체 어떤 매력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오르한 파묵은 이스탄불이라는 공간에 동시대를 살고 있는 터키사람들의 공통적인 감정을 비애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나에게 이스탄불의 비애는 쉽게 드러나 보이지 않았다. 이를 느낄만큼 자세히 깊숙이 이스탄불을 관찰할 여유가 부족했다. 우선 아시아지구와 유럽지구 사이에 놓여 있는 보스푸르스 해협을 건너고 싶었다. 우리 숙소가 위치한 탁심과 이스탄불의 부자들이 산다는 베백도 비교해 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이스탄불이 보여주는 과거유산과 현재의 모습, 이슬람과 기독교의 양립, 동양과 서양을 잇는 지리적 위치,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철학? 같은 것들을 잘 조합된 이스탄불이라는 이질적인 공간을 온전히 느껴보고 싶었다.

짧은 기간 마스터 클래스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습성때문일까, 터키도 1일 투어가이드로 속성으로 배워보고 싶었다. 투어 가이드와 1일 동행을 통해 이스탄불에서 중요한 갈라타 다리, 지하저수지, 블루모스크, 아야소피아 등 대표적인 이스탄불의 문화유산을 찍고 왔다. 역시 전문 가이드를 통해 설명을 들으니 살아 있는 역사를 체험하는 기분이었으므로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조금이나마 터키의 역사에 대해 알고 나니 궁금증이 더 생겼다. 터키 사람들에게 살아있는 문화적 유산을 본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세계대전이후 영국과 미국으로 세계의 패권이 넘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세계의 중심은 이스탄불이었다. 한때 위용을 자랑하던 오스만 제국이 무너지면서 함께 건물도 그들의 흔적도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니라, 건물과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이스탄불. 첫째 둘째언니가 전국 1등을 하게 되면 셋째는 연세대갈 점수를 맞아도 자격지심을 갖는다는데, 터키인들에게는 과거 선조들에 대한 자격지심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되려 이를 자랑스러워 할까? 지금까지 이스탄불을 포함하여 5개 지방을 돌아 다녔는데 어떤 지역 어떤 장소에서도 늘 터키의 국기는 휘날리고 있었다. 가장 재미있게 놀았던 페티예 보트투어에서도 다이빙쇼 끝에 다이버가 물속에 잠기는 시늉을 하더니 터키국기를 팬티속에서 꺼내서 수면위에 펼쳐들었고 이어 터키국가가 울려퍼졌던 순간 사람들이 국가를 따라부르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다.이런 나만의 조각 경험들로 터키사람들은 오스만의 후예임을 자랑스러워 한다고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수도 있는 것이기에 쉽게 답을 내릴 수는 없었다.

그래도 내가 경험한 것을 중심으로 말하자면 지리적 위치상 실크로드의 시작점이 되었으며 동서양 문물교류의 역할을 해서일까 터키사람들은 타고난 장사꾼이다. 도처에는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널려있고 친절을 배풀면서 오지랍까지 넓으며 누구든 바로 친구로 만들어 버리는 친화성이 그들의 DNA에 새겨져 있을 것만 같다는 것이 터키사람들을 접촉한 후 내게 든 느낌이었다. 지금의 나의 관점으로 생각한다면 터키 사람들은 그들이 역사의 중심이 되었던 민족이었던 것에 대한 자부심과 언제나 눈에 보이는 예전의 영광과 폐허를 동시에 보여주는 날것 그대로의 건물들이 상기시키는 상실감과 먹먹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스탄불은 고대시대부터 비잔티움, 콘스탄티노플, 그리고 이스탄불로 이름이 세번 변했다. 이 공간은 고대에서 중세 로마제국의 통치를 받다가 중세부터 근대화기까지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았고, 이후 현대 터키공화국이 되었다. 고대 로마제국시대에 이스탄불은 비잔티움으로 불렸다. 학창시절 세계사 시간에 졸았던 이들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313년 기독교에 대한 박해를 끝내고 기독교를 공인한 인물인데, 이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비잔티움을 새로운 로마의 수도로 공표했다. 이스탄불이 콘스탄티누스의 도시라는 뜻의 콘스탄티노플로 불려진 것은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서거한 후의 일이다. 이후 1453년 오스만제국에 의해 비잔틴 제국이 멸망하면서 로마시대는 끝나고 ‘이슬람이여 번성하라’라는 뜻의 이스탄불(터키어)로 불리게 되면서 오늘날까지 이 도시의 이름은 이스탄불이라 불리고 있다. 즉, 오늘날 터키는 공간적 시간적으로 고대 로마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도시이지만, 터키인들의 정체성은 오스만의 후예이다.

이와 같이 고대, 중세, 근대를 거치는 동안 이곳 이스탄불의 지배세력이 바뀌면서 통치자의 권력을 확고히 하기 위한 건축과 종교 및 정책에 많은 변화가 있었고, 고대부터 현대까지 전부 다 볼 수 있는 믿을 수 없는 건물이 바로  아야소피아 박물관이다. 아야소피아 건물(아래사진)의 현재 모습은 과거 2차례의 하드웨어 소실 이후 강력한 황제권을 재건하고자 했던 유스티니아누스황제의 재건 결정에 따라 로마의 시민들이 5년 11개월의 짧은 기간에 걸쳐 완성된 정교회 성당으로 지금으로부터 약 1500년전에 지어졌다. 당시 내부는 화려한 금장식과 기독료를 상징하는 모자이크로 유스타니우스황제가 감격할 만큼 철저히 호화로운 건물로 지어졌다. 그러나 십자군 전쟁을 거치면서 황금장식은 상당부분 소실되었다.


십자군 전쟁은 중세 라틴교회의 공인을 받은 종교전쟁으로 명목은 성지를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탈환하기 위해 지중해 동해안 지역에서 진행된 전쟁을 일컫는다. 그러나 명목과 달리 지중해 동해안에 출몰한 십자군원정대는 정교회의 유산까지도 약탈하고 훼손했다. 제4차 십자군(1202년~10204년) 때는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십자군에게 함락, 약탈당하기도 했다. 이과정에서 아야소피아의 유산들이 일부 손실, 파괴되었다.


그후 비잔틴 제국이 오스만 제국에 의해 멸망하고,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아야소피아 성당은 기독교가 아닌 이슬람교도를 위한 종교시설로의 용도변경, 즉 모스크화된다. 정교회 성당을 모스크로 바꾸기 위해 성당내부의 십자가를 떼어내고 남아 있었던 기독교적 모자이크 위에 이슬람 문양의 모자이크로 덧입혔으며, 외부에는 모스크를 상징하는 축대가 세워지는 등 하드웨어의 변형이 일어났다. 1923년 오스만 제국이 무너지고 터키 공화국이 수립되었을 때 터기가 이슬람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아야소피아라는 동서양과 시대를 초월하는 문화유산이라는 상징성을 기리기 위해 이슬람이든 기독교든 일절 종교적 목적으로의 사용이 금지되었고, 이에 박물관으로 계승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아야소피아는 성당도 모스크도 아닌 박물관인것이다. 터키인들 마음속에는 블루모스크가 아니라 아야소피아에서 예배를 드리고 싶겠지?

이처럼 고대 로마역사로부터 중세를 거쳐 이어져 내려온 정교회의 자취, 그리고 터키공화국의 종교적 근간이 된 이슬람교의 역사와 스토리는 아야소피아에 집대성 되어 있다.

아야소피아는 건축적으로도 매우 훌륭하다. 1999년 8월에는 수도 이스탄불 동쪽에서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하면서 1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대참사에도 굳건히 그 형태를 보존한 1500살이 넘는 아야소피아다. 아야소피아의 역사적 의미, 그리고 건축당시 전해져 내려오는 스토리를 듣고 아야소피아의 내부를 둘러보면서 이 건물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직선은 인간과 자연의 선, 곡선은 신의 선이라고 가우디가 말했다. 우리는 곡선과 다채로운 색깔을 보면 즐거움을 느낀다. 지진과 화산을 피할 수 없는 불안정한 지질대에 위치해 있으면서 지질 유산을 잘 보존해와 세계 각지의 사람들에게 보여줄 것이 많은 나라터키에서 기쁨을 느끼며 여행을 시작했다. 삼면이 흑해, 에게해, 지중해로 둘러싸여 있는 다양한 지형과 기후대를 가진 다채로운 나라 터키라는 확신을 한 것은 여러지역을 여행하고 비교하면서 느낄 수 있었다. 카파도키아, 파묵칼레, 그리고 이스탄불에서는 고대로부터 이어진 문명의 역사가 그 어떤 거짓말도 용인하지 않고 그대로 증명이 되는 곳이 터키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현대사에서 터키공화국으로 새롭게 출발한 지 약 95년이 흐른 지금의 터키의 모습을 보니 과거의 영광과 아쉬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터키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터키여행을 통해 지구는 넓고 역사는 길며 인류는 터키를 거쳐 격렬하게 부딪히면서 교류해 왔다는 사실을 느끼며 현재에 몰입하되 현재의 시공에 갇혀 있지 말자는 다짐을 하고 여행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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